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면 내각 (문단 편집) === 경제적으로 무능했는가? === 경제적으로 무능했다고 비판받기에는 그 존속기간이 너무 짧아 명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장면 내각은 불균형 발전을 골자로 하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발표는 5.16 이후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전 정부와의 차별을 두려던 군부의 계획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결국 이를 작성한 장면정부의 경제학자, 관료들의 의견을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은 장면 내각의 정책을 온전히 따른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민주당의 계획안은 세계 4위 70만 국군의 규모를 10만명 감축하는 등 예산안 대비 국방비를 20%로 10%p 낮춤으로써 추가적인 재원 확보를 노렸지만, 감축안의 경우 5.16 이후 군부의 이해 관계와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따라 백지화되었고 따라서 총투자액 중 차관 도입 비중은 더 커졌다. 그러므로 장면정부의 계획과 1964년부터 시행한 경제정책을 동일하게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1962년부터 장면 내각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1964년]] 수출 1억 달러,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한 것과 중공업화에 성공한 것은 기본적으로 박정희 정부의 성과이다. [[박정희 정부]] 출범 이후 초기 3년간 시행한 경제개발 계획은 전체적으로는 [[이승만 정부]] ~ 장면 내각 계획들에서 주요 지표들을 수정한 것이다. 이는 [[종속이론]]에 입각해 시행한 [[수입대체산업화]]가 골자였지만 1964년 달러당 130원의 공정환율을 265원으로 평가절하해 환율을 현실화하고 전 산업의 수출화로 전환하는 [[수출주도산업화]]로 근본적으로 뜯어고쳤다. 수출주도 노선이 성과를 본격적으로 거두기 시작한 이후의 한국 경제 성장[* [[아시아의 네 마리 용]]. 1986년 삼저로 인해 3년 동안 수출액과 수입액의 양이 뒤집힌다.]을 생각해보면 연관성은 많지 않다. 다만 세부적인 인프라 건설 계획 등은 연결된다. 다음은 장면 내각 집권기 당시에 실제로 시행된 국토개발계획들의 목록이며, 다음에 제시된 국토개발은 확실히 장면 내각의 과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댐 건설 및 수원, 전력확보 계획''' [[진주시]] 남강댐 [[춘천시]] 소양강댐, 춘천댐 [[임실군]] 섬진강댐 * '''화물철도 건설 계획''' [[정선선]], [[경북선]] * '''[[울산]]공업도시 건설계획''' * '''도로망 정비''' [[양주시]], [[화천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